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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교구장 사목교서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태 19,2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교구장에 착좌하여 교구 사목을 맡아온 지 어느새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는 교구의 일꾼으로서 교구의 비전과 사목방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은 사람들에게서 질문을 받기도 하고 제가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교구의 평신도, 수도자 그리고 사제들에게 앞으로의 교구 전망과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교구장이 되기 전부터 ‘하느님 백성의 대화’ 모임을 통해 네 개의 큰 기둥을 세웠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 청소년들이 찾아올 수 있는 교회, 생태환경을 살리는 교회, 그리고 모든 계층과 소통하는 교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1.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연대와 나눔
  교회는 세상 안에 있기에 인간 삶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특히 광주대교구는 5·18 민중항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유산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는 세상 안에서 좀 더 투신해야 합니다.
  최근 코로나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고 더 이상 교회를 찾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이는 급변하는 시대에 교회가 개인적 기대나 공동체적 바람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본연의 역할과 복음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연대와 나눔입니다.

  그동안 교회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순응하며 살아왔습니다. 교회 행정을 위해선 자본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선교와 생활을 위해서도 분명 물질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씀과 달리, 어느덧 교회도 자본주의 속성에 젖어 살아왔습니다. 부끄럽지만 이를 인정하고, 좀 더 말씀 중심적인 삶으로 살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소유냐 존재냐”라는 질문이 우리에게 알려주듯이, 교회는 좀 더 가난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를 모두 내어놓은 소년의 마음처럼, 나의 것을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사제의 첫 마음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2.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요즘 언론상에 보도되고 있는 교육현장의 인권침해 사례와 청소년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걱정이 많습니다. 수많은 학교 밖 청소년들의 현실과 그들이 당면한 문제는 심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미풍양속은 사라지고 어른으로서의 역할도 축소되었습니다. 이것은, 좋은 성적과 성공만이 마치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삶의 방향성을 하나로 정해놓고 이를 강요해 온,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많은 청소년들은 꿈을 갖기보다는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에서조차 경쟁만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참된 우정과 선의의 경쟁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고 소득의 불균형 속에서 이미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 청소년들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단지 교육제도와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고 묵인하거나 방치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공감하며 청소년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3. 공동의 집인 지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로 온 국민의 우려가 큽니다. 국가가 좀 더 적극적인 대응으로 앞장서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 상황에서도 우리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지금도 자연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많지 않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나가겠습니다. 이를 위해 생태환경위원회에서 인식의 변화를 위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공동의 집’인 지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전 교구민들이 관심을 갖고 생태환경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일을 찾겠습니다.

4.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과 이제 막 소통을 시작한 느낌입니다.
  신자분들은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통해 예전보다 더 능동적인 참여를 요청받고 있습니다. 수도자들도 새로운 교회에 대한 기대를 갖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사제들 또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사목활동에 열정을 갖고 있음을 저는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민과 소통해나가야 한다는 점도 잊지 않고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더 다가서겠습니다.

5. 가난과 복음으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의 사목은 예년의 큰 네 기둥을 중심으로 하되, 가난과 복음에 더 우선을 두려고 합니다.
  전남 인구는 2080년까지 꾸준히 줄어들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래서 교구 조직을 확대한다거나 성당 건축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교회를 확장하지 않겠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듯이 신자들의 모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힘을 쏟고, 가난의 영성을 체험할 수 있는 실제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가난한 형제들을 옆에 두고 나만 홀로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실 때 가난한 이들과 아픈 이들, 소외된 이들과 죄인들을 먼저 챙기셨습니다. 교구에서도 힘겹게 홀로 살아가는 어르신과 이주민, 난민과 장애인, 그리고 노숙인을 위한 사목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갈 공동체는 그저 친목 단체가 아니라 주님의 뜻과 하나되는 친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대림절로 시작되는 새해에는 주님이 원하셨던 공동체를 생각하며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2023년 12월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옥 현 진 시몬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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